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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verest Trek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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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정운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8,141회 작성일 05-05-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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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제가 지난 2월에 다녀온 트래킹을 정리한 것으로
이 글들은 동아일보에 7회에 걸쳐서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빡빡하더라도 유익하게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첫째,힐러리경(Sir,Hillary)과 셀파 텐징

둘은 에베레스트를 올랐다.빙하의 협곡에 다리도 없던 시절 무조건 올랐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꼭데기에 둘의 사진이 찍혔다.그리고 50년이 지났다. 지독한 고소(고산병)와 싸우던 셀파 텐징이 죽었다.그리고 힐러리가 말했다. summit는 텐징이했다.그는 나를 앞서서 루트를 구축했고,자일을 설치했으며 정상에 인류 최초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나와 공유하기 위해서 기다렸다. 이 얘기를 이제서 하는 내가 부끄럽고,이 얘기를 죽을때까지 침묵한 텐징은 위대하다.이 신사는 해발 3,780m의 쿰중에 학교를 만들고 셀파를 양성했으며 그 아이들이 지금 제대로 보수를 받으며 히말라야의 모든 역사를 쓰고 있다. 셀파들은 expedition(원정)의 모든것을 이끈다.이 세상에서 셀파를 가장 흔하게 그리고 많이 고용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원정대이다.유럽이나 일본의 원정대는 우리보다 아주 드물게 셀파를 고용하며 8,000m급 14좌의 완성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대대적으로 광고하지 않으며 종합적으로 완등의 가치를 따지면 우리보다 열배이상 많다.이것은 본인이 기록을 본 내용이며 절대로 옳다고 할 수는 없는,전적으로 개인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Ang Rita셀파는 에베레스트를 10회나 Summit했으며 우리나라의 허모씨도 포함 된다.그는 현재 카트만두에서 고산병의 후유증으로 1시간 이전의 기억을 잘 못하고 술로 살아가고 있다.

에드먼드 힐러리경의 동상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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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트래킹 이야기

히말라야 트래킹은 네팔,파키스탄,티벳,인도등의 국가에서 할 수 있다. 가장 접근이 용이한 네팔이 선호되어 많은 트래커가 네팔로 몰려 든다. 네팔에는 크게 에베레스트 싸이트와 안나푸르나 싸이트,부탄왕국등으로 구분되는데 난이도가 가장 어려운 에베레스트싸이트의 경우 고쿄코스와 칼라 파타르코스 그리고 베이스캠프코스등으로 나뉘는데 이번에는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칼라 파타르(5,550m)코스를 등반했다.등반도중 만난 많은 트래커중에 한국인은 5명이었으며 유럽의 수많은 트래커들과 같은 롯지(lodge-guest house) 를 쓰며 누룽지도 끓여 먹고 짜장면도 만들어 먹었다.코스의 과정보다는 느낌 위주의 기록을 남기기로 결심하여 기록이 정리되는대로 차근차근 올릴 계획이다

셋째,티벳과 달라이라마 그리고 뙤놈들

어느날 중국이 티벳을 접수했다.승려 2천명을 철사로 목졸라 죽이고 모든 기관을 장악했으며 선량한 티벳인을 무차별 탄압하여,달라이라마는 겨우 탈출했다. 이 뙤놈들의 주장은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까마득한 옛날,중국이 한때 티벳을 점령한적이 있다는 이유였다.그들은 베트남도 점령하려다가 실패했으며 현재는모택동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네팔에 산재시켜 마오바디라는 게릴라를 지원한다. 그리고 지금 티벳에는 한족을 대거 이주시켜 상권을 장악하고 문자를 한문화 하며,종족의 합성화를 꾀하여 중국화시키고 있다.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한국은 중국의 땅이기도 하고 일본의 땅이기도 하며 중국과 유럽은 원나라의 땅이기도 하다는 해괴한 이론이 된다.도데체 이 되먹지 못한 족속들은 지구상의 모든것을 자기화하려하는 더러운 습성이 정치의 최고위부터 일사분란하게 하달되고 실행되며 비밀이 지속된다.그 완벽한 선의 극치인 달라이라마는 중국의 끊임 없는 살해위협에 시달리며 독립을 추구하나,우리나라는 방문하지 못하고 거절 당했다.줏대도 없이 중국의 눈치만 보는 김 아무개의 대통령시절 얘기다. 그러고도 바로 몇달 후 무역보복을 당한 바로 우리의 얘기다. 다음에....

넷째,고소(고산병)와 생리

트래킹의 출발지인 루클라(Lukla)공항으로 출발하기위해 숙소를 출발. 예정시간보다 일찍 출발한 이유는 \"번다\"때문이다.네팔 야당들의 집회(Party)의 일종인 이 번다는 수시로 발목을 잡는다.모든 차량의 운행이 중지되고,운행되는 차량에는 돌을 던진다.200루피 더 주고 캄캄한 새벽 카트만두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약 세시간을 기다려서(이 정도의 시간은 기본이다)예띠(Yeti-설인)에어로 루클라에 도착,바로 포터를 흥정해서 산행을 시작했다. 루클라의 해발은 2,840m.백두산보다 높다.안나푸르나의 출발지인 포카라는 800m 거의 고소를 느끼지 못하지만 이곳은 걸음마다 숨이차다.첫날 원래는 고소의 적응등을 이유로 팍딩(2,610m)까지 가서 롯지에 자는게 보통이나 빡빡한 일정 때문에 다음날의 산행에 유리하도록 강행군하여 몬조(Monjo)까지 갔다. 거리는 10여km정도인데 이는 고소가 없는 국내에서도 꽤 긴 코스이며 경사가
들락이는 고산지대의 트래킹을 감안하면 이런 강행은 현지에서도 별로 없다. 고소의 가벼운 증상은 숨이 차고,뒷머리가 아프다.순응을 하지 않아서 점차 심해지면 불면이 온다.평소보다 더 깊은 호흡으로 더 빨리 호흡해야 하는데 평상시 우리가 하던 호흡대로 채널이 맞춰져서 잘 때는 숨이 멎는 증상이 오고 그때마다 깨는데,그 주기가 몇 분 정도라 오히려 잠을 자지 않는게 더 편하니까 아예 못자는 것이다.나는 6일동안 10여시간밖에 못잤다.밤이 무섭다는 우스개도 우습지 않다.고소는 누구에게나 온다.그러나 아이를 낳아본 엄마가 여러 아이를 낳듯 고통을 미리 알고 좀 익숙해져 있는것 뿐이지 아프지 않은것은 아니다. 고소가 심해지면 설사와 폐수종을 거쳐 뇌수종까지 오는데 이 정도는 매우 위험 하여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우리나라의 원정대중 여럿이 미처 5,000m에 이르기 전에 사망한 사고가 많다.그들의 추모비가 히말라야의 여기저기에 몇 있다. 어쨋든 나와 홍 아무개는 고소가 시작됐고,그걸 기념으로 약간의 술을 마셨다.

한국인의 돌무덤(해발 5,1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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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포터(porter)그 영원한 운명

우리 네 명은 개인의 배낭을 빼고 부식,장비등의 개인 짐이 약 20kg씩 있었다. 우리는 포터역시 4명을 고용하려 했으나 포터들은 두명이 하겠다고 했다. 각각 40kg씩의 짐을 지겠다고 했고 대신 20kg당 350루피/1일의 패이를 깎아서 40kg당 600루피/1일을 제안하여 그리했다.조건에는 그들의 식사와 잠자리는 그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단서와.그들은 짐을 진다.머리에 띠를 두르고(이건 고산족들의 특징이다-안데스도 그렇고 아프리카도 그렇다)종일 걷고 때로는 뛴다.그들은 적은 산소에도 살아 왔던 채널이 맞춰져 있어서 고소증세는 없다. 그 정도의 짐을 지고 오르는건 대청봉을 오르는 거리와 맞먹는다.그리고 그 운항은 계속된다.그들은 아침을 치아(우유에 홍차를 섞은)한 잔으로 때우며 점심은 대개 국수 한 공기,저녁에는 밥을 먹는다.잠자리는 각 롯지의 포터숙소를 이용하는데 열악하다.그리고 짐을 질때나 그렇지 일이 없으면 바위틈새나 나무아래등에서 얇은 담요로 몸을 감고 웅크려 잔다.그들에겐 짐이 숙명처럼 느껴진다 열살 이전부터 나무를 지고(경사 70도에서도 나무를 한다)열몇이면 포터를 하고 그걸로 일생을 산다.짐을 지지 못하도록 늙거나 병이 들면 히말라야의 석양처럼 죽어갈 뿐이다.아주 조용하게.

여섯째,호텔 롯지(lodge)

롯지는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해 주는 산행 코스의 여기저기에 있다.주로 트래커들이 이용한다.원정대는 대개 날씨가 좋은(춥거나 덥지 않고,우기가 아닌)때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대개 우리나라 원정대)장비와 인원이 많아서 주로 텐트와 쿡(요리사)를 이용하므로 우리처럼 불리한 계절에는 롯지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방의 크기는 한평을 넘지 않는다.침대는 싱글트윈.냉난방은 없고,대개 전기시설도 없다.그럼 뭐냐구? 더럽게 춥고 전기도 없고 절라 삭막한거지머. 히말라야 산행의 필수 장비중 해드랜턴과 동계침낭(백만원 이상)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그 이유다.롯지에는 식당(dining room)이 있는데 여기에는 대개 10w의 전등도 있고 난로도 있다.해발 4,000m이하의 롯지에는 장작을 연료로,그 이상은 야크의 배설물을 말려서 땐다.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물론 난방이 없고 저녁에 한 두 번의 연료를 때는데 도움이 않되고,안락미로 만든 밥(plain rice)과 토스트등 몇가지의 먹기 힘든 메뉴가 있다.대개 어려운 나라가 그렇듯 인건비에 비해서 음식이나 물등은 터무니없이 비싸다.우리는 고추장,마늘쫑,깻잎,떡국,미역국,누룽지(이거 수퍼에서 파는데 부셔서 가져감)등으로 그들의 밥을 시켜서 먹었다.강원도 오지에 가면 연기가 매캐한 부엌과 외풍이 처절한 방이 있지만 강원도의 방은 온돌이나 되지...암튼 추웠다.그 추위를 우모복과 그들의 레몬티로 버텼다.가격은 싸다.비수기에는 100루피(1,800원)이고 성수기에도 200루피를 넘지 않는다. 다음에..

일곱째,히말라야의 별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에 입산신고를 하고 남체(Namche-3,440m)로 출발했다. 남체 바자르(시장)은 시장이 열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을 다녀온 분들은 알리라,올라가는 그 어프로치가 얼마나 가파르고 길며 지치게 하는지..그저 헉헉대며 걷고 또 걷는다.많이 쉴수록 더 힘든 산행에서 비로소 이곳에서부터 잡념은 투지로 바뀐다.역시 고소로 시달리던 홍 아무개는 이곳에서부터 담배를 끊었다.그는 호흡곤란과 두통 그리고 식욕 부진의 증세였고 나는 불면으로 시달렸다.전기불도 없는 롯지에서 허덕대다가 밤에 하늘을 보니 별이 있었다.어릴적의 시골에서 본 어쩌구의 스케일이 아니라 온 세상의 별이 모조리 내게 쏟아진다.그 지독한 별과의 조우에서 히말라얀들의 순리대로의 탄생과 소멸을 짐작하고 무념으로만 동화되는 히말라얀의 마음들을 읽을수 있었다.그렇게 별을 보며 날이 밝았다.아침이 되자 장이 열렸다(토요일) 지금은 동계라 없지만 이곳은 티벳에서까지 장을 보러 온다.토마토와 오렌지 그리고 조잡한 중국제 공산품까지 다양하게 거래되며 맥주는 필리핀의 싼미구엘 이 팔리고 있다.모두 야크와 버팔로와 포터들이 전날 루클라에서 지고 온 물건 들이다.

여덟째,히말라얀이 된 한국인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는 몇의 한국인이 흩어져 산다. 모두 산꾼출신으로 히말라야에 원정등을 다니다가 눌러 앉은 이들이다.

1.이 석우형:원정대장 출신으로 네팔,인도,파키스탄,티벳의 거의 모든 지역을 다녔고,형수 윤 기자씨와 왕궁앞에서 비원이라는 한국식당을 함. 비원에는 거의 모든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을수 있고 재료역시 거의 다 한국 산꾼들이 드나들며 조달하고 있음.삼겹살과 소주. 대개의 산꾼처럼 지독한 술고래로,술이 깨면 외롭다고 생각함. 사람과 산의 네팔 주재원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함.
2.김 홍성씨:시인이며 산꾼이며,음식점(소풍)을 운영함.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요즘은 소강상태.그의 저서 히말라야 가는 길은 한국의 서점에도 있으며,고철거사라는 법명으로 통하고 그 식당의 메뉴중 최고는 갈치조림과 구이가 있음.
3.김 아무개:비빔국수를 주 메뉴로 하는 뒷골목의 음식점 짱 레스토랑 주인. 산과는 인연이 전혀 없다는데 어쩌다 주저 앉았는지 불가사의한 작고 통통하고 미적감각과는 거리가 먼 여자.그날도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데,멤버들이 모두 머리를 감지 않은듯.

작은 사람이 이석우형(파탄 왕궁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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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씻는 것

출발전 준비물에는 세면도구라는게 있다.물론 어디를 여행하든 그렇지만. 대개 치약,칫솔,비누,수건,면도기등속을 챙겨가기 마련인데...나도 챙겼다. 네팔에 도착하자 그네들의 얼굴을 보고 \"정말 씻질 않는구나\"라고 느낀다. 그리고 산행이 시작되면 씻는 행위는 부질없고 비 생산적이며,시간낭비이며 하루나 이틀 논하다가 말아야하는,잊고 살아야하는 짓거리란걸 알게 된다. 가끔 이빨이 무겁거나 남이 그 이빨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계곡에서 몇 번 문지르고 말 뿐 비누는 꺼낼수도 없고 꺼내면 죄를 짓는 기분이라 서로 씩 웃고 만다.T.V등에서 산꾼들의 꼬라지를 본 사람들은 이제 알것이다.일행중의 마 아무개는 물티슈를 가져와서 중요한 부분의 세척을 하다가 그것도 그만두었다. 우리의 꼬라지와 히말라야를 보실 분들은 E.Mail주소를 남기세요. 다음에....

일주일동안 잠을 못잔 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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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째,그리운 산사람들

텡보체(Tengboche-3,860m)로 가는 길은 설악의 마등령을 넘는 기분이다. 남체와의 표교차는 420m 밖에 나지 않지만 급경사를 내려간 후 다시 올려 치는 코스라 고소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대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코스다. 실제로 이곳은 에베레스트(8,850m)와 눞체(7,855m),아마다블람(6,812m)이 모두 보이고 대단히 삭막하여 대다수의 트레커들이 여기서 발길을 돌린다.사진만찍고. 또 관광여행사의 상품도 여기까지이고 더 진행하면 요금이 추가된다. 여기에는 1977년 고 고상돈 대원의 에베레스트 등정 20년을 축하하는 한국산악회의 기념비가 서 있다.그는 갔지만 그는 최초의 한국인 써미트였고 그때부터 14좌의 투지는 불이 붙었다.묵념을 하고(만약 그가 생존했다면 지화자를 불렀을테지만)약 20m위의 평평한 바위위에 고 손용구의 영정을 묻는 작업을했다. 고 손용구는 산꾼이며 후배로 강릉의 반려산악회 소속이고 등반은 원주의 치악산악회와 많이 이루어진,태어나서 한 번도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은 그저 있는듯 없는듯 살아 온 녀석이다.지난 12월 20일 옆구리가 아프다고 하여 병원을 찾았으나 간암 말기였고 꼭 1개월만에 졸했다.그의 소원은 히말라야였고 그의 뜻을 묻었다.몇방울의 눈물로 다시 찾기를 약속하고 소주를 마셨다.

텡보체의 사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만들어준 후배의 돌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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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로 아래의 고상돈대원 에베레스트 등정 20주년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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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번째,땔감과의 싸움

소득이 높지 않은 나라들의 공통점은 물과 땔감이 귀하고 잠자리가 열악하다는것이다.(이걸 후진국이라고하면 않된다)특히 추운 지방에서의 땔감은 그런데... 히말라야의 4,000m급 이상은 나무가 없다.또한 3,000m급에서도 귀하며,있더라도 경사 70도가 태반이고 그 수량이 절대 부족하다.석유가 나오지도 않고 석탄도 없다.사람들은 춥다.땔감(장작)은 비싸다.하루를 때려면 1,000원이상 필요하다. 히말라얀의 하루 소득과 맞먹는다.집에서는 대개 1명 이상의 땔감 전담이 있다. 롯지에서도 함부로 난로를 피우지 않는다.해가 진 후 잠깐 때고 곧 잔다. 인터넷에 T.V에 술과 잡거리에 밤 12시 이전에는 거의 잠든적이 없는 우리는 저녁 7시 쯤에는 잠 들 수가 없었다.더구나 고소와 지독한 피로(너무 피곤하면 잠을 이루기 힘든거 아시지요?)로 밤이면 자꾸 덜덜떨며 밖을 배회했다. 눈이 내렸다.한밤에 야크들이 서성대는 텡보체의 눈내리는 밤에 우모복을 입고도 마구떨렸다.

열 두번째,죽음과 윤회학

우리나라는 매장과 화장문화가 있다.썩히거나 태워서 뿌린다. 네팔에는 화장문화만 존재한다.묻을 공간과 조건이 열악하고 우기(몬순)를 빼면 너무 건조해서 썩지 않는다.그래서 태우는데 그게 우리완 좀 다르다. 장작을 쌓고 개천(이게 히말라야에서 발원하는 성수의 원류다)가에 마련된 화장터에서 그냥 태운다.여러구의 시체들은 일렬 횡대로 타는데....가난하여 장작이 부족한 유족들은 미처 다 타지못한 시체를 개울에 밀어 넣고 간다. 아무도 울지 않는다.수없는 윤회속에 시체는 한 굴레의 껍질일뿐이며 존재를 남긴다는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티벳에서는 순장(조장)을 한다.네팔보다 더 건조한데다가 화장을 할 나무조차 더 귀하기 때문이다.조장을 담당하는 스님 몇 분이 연장으로 시체의 살을 발라 독수리를 부르면 기다리던 수 백의 독수리가 몇 분 내에 살을 모두 먹는다. 뼈는 곡식과 섞어 빻아 까마귀들에게 먹인다.물리적인 \"유\"에서 \"무\"로의 환원은 이렇게 간단하거늘,그 물리적인 \"유\"의 보존을 위해 온갖 방법을 쓰는 우리네의 문화가 진정으로 앞선 것일까.히말라야는 이렇게 생각을 하게 하고 점점 히말라얀으로의 중독을 가져 온다. 다음에....

카트만두의 화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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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번째,노스 페이스(THE NORTH FACE)제국

팡보체를 지나 우리는 딩보체(Dingboche-4,410m)로 오른다. 텡보체로부터 표고 600m를 더 올라간다.저지대에서야 구룡사에서 치악정상인 시루봉 거리지만 여기선 늘 숨이 가쁘다.오래전 고향마을의 생각부터 돌아 가신 부모님생각,따듯하고 안락한 필리핀의 바다와 그리운 사람들까지 모두모두 생각한다.그리고 점점 생각이 없어진다.김창완의 노래처럼 그래 걷자, 발길 닿는대로.....같이 간 강 아무개와 홍 아무개는 추위로 떨기 시작한다. 홍 아무개는 트래킹동안에도 다운까지 껴입고 행군한다.그의 옷이 문제이다. 윈드스토퍼는 가짜를 입었고,다운은 고어텍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명 우리가 말하는 중국제 \"노스 패대기\"를 입어서이다.그는 정말 패대기를 치고 싶어했다.더구나 마 아무개와 내가 수 십번 약을 올려 더했을 것이다. 한편 강 아무개는 우모복외에는 전혀 방한대책이 없었으나 이미 여러번의 원정경험과 고소적응으로 견뎌내고 있었다.트래킹중의 외국인들도 거의 다 노스 페이스다.이렇게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 상표가 퍼진 이유는 물론 디자인을 꼽을 수 있다.더 비싸고 더 품질좋은 브랜드는 아주 많지만 \"노스\"는 그 한계를 넘어 국내의 산에서,노인들까지 입는 브랜드가 됐다.물론 가짜가 많지만...이 거대한 브랜드의 상품종류는 어마어마하며 가격도 싸진 않다. 대리점을 개설하여 상품을 모두 진열한다면 몇억원으로는 부족하다.국내의 몇몇 브랜드는 빨리 쫓아가야할 사명을 가져야 한다.딩보체에 도착하여 초죽음.

열 네번째,소(야크)똥만도 못한 여편네

해발 4,000m를 넘으면서 롯지에서는 야크의 말린 배설물을 연료로 쓴다. 풀어 먹이는 야크도 많거니와 수목한계선을 넘으니 나무는 없기 때문이다. 화력도 좋고 연기도 않나서 좋으나 오래가지는 않아서 자주 넣어야 한다. 딩보체의 히말라얀 호텔(이거 그냥 롯지인데..)로 숙소를 잡았다.해가 지자 주인 여편네가 소똥을 넣고 한 번 때더니 더는 않 넣어준다.고소와 추위로 지친 우리는 사정을 했지만 아침에 오란다.돈을 더 준다고 해도 술(창이라는 막걸리)만 마시고 동네 남정네들과 시시덕거린다.롯지의 주방은 온통 주정뱅이 들로 들끓는게 영락없는 분수에 주책바가지 주막이다.더럽고 시끄러워서 방으로 자러 갔으나,골짜기에 외풍은 지독하고 전등도 없고,준비해간 양초를 켜고 덜덜댔지만 고소로 더는 못견디고 거의 밤을 샜다.아침이 되자 식당을 갔더니 8시가 되어야 난롯불을 피워 준다며 그 술꾼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그 술꾼들 은 아마도 밤을 샌듯.8시가 되자 해가 떴다.난롯불을 피워 달래자 여편네는 밖을 가리키며 \"해가 떴으니 저녁에 해가 져야 피워준다\"고 했다.나는 웃으며 얘기했다.물론 우리말로 : 에라이 빌어먹을 여편네야 우라질 소똥만도 못한 옘병할 인간아 새우젓장사보다 더 짠년아 엿 무라!

열 다섯번째,나마스떼 부라더(brother)

나마스떼는 안녕,안녕하세요를 뜻한다.그리고 손을 합장하고 한다. 등하산을 하면서 만난 포터들과 야크 몰이꾼과 나뭇꾼과 짐꾼과 허리 휜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우리가 인사를 하면 순백의 미소로 답을 한다. 조금 더 잘 산다는 바깥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여러날 걷고 같은 공기를 마신 덕분에 히말라얀(Himalayan)으로 인정하는 것이다.그들의 많은 얼굴표정 에서 짜증은 한 번도 볼 수 없었다.이웃이나 주변에서 알아서 해롭게 하지 않고 좀 내게 손해가 되더라도 참는 미덕이 인생 자체에 깔려 있는듯 했다. 하산길에 만난 올려치는 포터하나는 \"나마스떼 부라더\"라고 말했다.나는 눈물이 돌았다.그는 10mmm합판 8장을 지고 집짓는 공사장인 팡보체로 가고 있는중이었다.그가 진 합판의 무게는 100kg은 될 것이고 그는 열시간 이상을 더 가야 했으며 그가 받는 돈은 2,000원을 넘지 않는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마스떼는 단순히 안녕!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의 아라리와 비교했다.특히 정선 그 심심산천의 사람들도 말이나 글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방대한 뜻을 느낌으로라도,조금씩,알게 해 달라고 빌었다.제발......

열 여섯째,히말라야의 별2

칼라 파타르로 가는 마지막 숙소인 로부체(Lobuche-4,910m)로 출발했다. 여기서부터는 고소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속도를 늦추고 물을 많이 마셔야한다.끝없는 구릉을 지나 자갈밭을 올려치면 빙하와 연결된 호수가 나온다.그리고 두시간후 셀파롯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롯지의 주인은 왜소한 체격에 너털웃음이 일품인 중년이다.그런데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그는 2003년 세계 산악마라톤 풀코스 우승자이다.에베레스트 베이스에서 남체 바자르까지 (5,364m-3,440m)그 기복이 심한 고지대에서 4시간 1분으로 우승했다.이건 대단한 기록이다.그는 올해도 세계신기록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우리는 쑤근거렸다.이 롯지에서 숙소비나 식사요금을 떼어먹고 도망치면 그가 하루 늦게 알더라도 절대로 남체를 벗어날 수 없을거라는... 롯지에는 영국에서 온 여자 하나와 역시 영국에서 네 번째 네팔을 방문한 범생처럼 생긴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여자는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둘이 애인인줄 알았는데 잘 때 보니 미련없이 찢어 지고 식비도 더치 로 하는걸 보고 유럽 녀석들의 습성이 새삼 생각났다.우리는 다음날의 긴 코스를 생각해서 일찍 자고,다음날 새벽 5시부터 칼라파타르로 향했다.에베레스트는 자신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가까이 갈수록 눞체에 가리고 비로소 바짝 다가가면 안개(산꾼들은 개스라고 부른다-이유는 잘 모르지만)에 가려,그 에베레스트의 가슴을 만지는건 대단한 행운이다.해드 랜턴으로 캄캄한 고락셉(5,140m)을 가니 불길함이 스친다.개스다.점점 가득차서 산행의 유지는 더이상 어렵다.우리는 원정에서 서거한 한국인의 추모비를 지나 언덕 꼭데기에서 포터와 상의를 했다. 절망이다.하루를 더 기다린다고 해도 희망은 없다고 한다.마대장에게서 탄식이 나온다.그는 이 칼라 파타르에서만 다섯번째 좌절이다.긴 생각과 논의끝에 철수를 결정하는데 그토록 고생한 홍 아무개는 그나마 꼭데기에 올라 개스로 뿌옇게 흐린 칼라 파타르를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내려 오는 길에 어제의 영국 범생이 올라 오고 있었다.다시 셀파롯지에 도착하니 영국 여자는 포터와 가이드를 데리고 포기,하산하고 있었다.

중간의 빨간 파카를 입은 사람이 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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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째,네팔의 긍지

네팔은 영국의 지배에서 1951년 독립하였다.영국은 대외적으로는 신사답게 순순히 독립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네팔에는 쿠쿠리라는 묘하게 생긴 칼이 있다.이 칼은 날 부분이 안쪽으로 휘어져 있는데 두들겨 만들고 매우 예리하다.영국의 지배당시 거의 전국민은 이 칼로 대항했다.그 날렵한 사람들은 고소에 지친 영국군의 캠프로 잠입해서 장교들의 머리를 사냥했다.시도 때도 없이 길에서도 산에서도 그들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았다.결국 영국은 그들의 왕권과 자유를 고스란히 물려주고 떠났다.지금 가난한 네팔에는 해군은 없고 육군과 공군을 합해서 약 5만명,그나마 공군에는 구식 헬기가 두 대 뿐이다.그러나 육군의 전투력은 세계최고다.영국의 특수부대에는 네팔의 용병만으로 구축된 부대가 있다.그들은 포틀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이라크에도 처음에 단독으로 파견되어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모든 교두보를 확보했다.국제 군사잡지는 전투에 파견되는 그들을 늘 최초로 대서특필한다.

열 여덟째,텡보체(Tengboche) 롯지의 神話

하산길은 빠르다 뛰다시피 강행이다.대신 소똥보다 못한 새우젓장사 여편네를 피해서 두글라에서 페리체를 거쳐 텡보체까지 속력을 내기로 했다.하산길은 홍 아무개가 제일 빠르다.텡보체 롯지에는 먼저의 주인이 웃으며 맞이 했다. 우리는 그의 앨범을 보았는데,(이건 대단히 친한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자료이다)그 내용은 감격 그 자체였다.여태껏 알려진 에베레스트에 대한 모든 정보가 상당수 바뀌어야 할...내용은 밝힐 수 없다.쓸데 없는 기자 나부랑이들이 왜곡 할 수도 있으며,그와의 약속이며,석우형께 위임했기 때문이다.어쨋든 그는 8년간의 승려생활을 하였고 精神이 살아 있었다.우리는 앨범을 본 후 기립박수를 쳤다.대충 그는... 인간은 돈으로 행복을 평가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그러나 돈은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요인이 더 많이 존재한다.1만 루피를 가진 사람이 1만 루피를 더 갖고싶은 욕망보다 9999만 루피를 가진 사람이 1만 루피를 더 갖겠다는 욕망이 훨씬 더 크다.돈은 많을수록 부작용이 더 많으며,행복은 가난한 사람이 느끼는 지수가 더 크다....뭐 이런 내용이었다.우리는 오징어(그들에게는 해산물이 없다)를 구워주고 흰떡을 구워주고 고추장을 나눠주고 거의 바닥난 소주도 조금 주었다.

열 아홉째,사나사(Sanasa)의 거짓말

하산길,우리는 사나사에서 그냥 남체 바자르로 빠지는대신 힐러리스쿨이 있는 쿰중(Khunjung-3,780m)을 들러서 가기로 하고 강행했다. 에베레스트를 다녀 본 사람이면 모두가 존경하는 힐러리의 학교와 동상도 볼겸.올라갈 때 점심을 먹었던 사나사에는 오를때 정신없어 못 본 글씨가 눈에 띠었다.\"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의 제과점 입니다\"그런데 쿰중에 도착하니 제과점이 또 있었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걸로 보아 사나사의 빵집은 거짓말 이었고,그걸 기념으로 거기서 점심을 먹었다.눈이 온다. 힐러리 스쿨을 들러 쿤데(Khunde-3,840m)에 오르니 눈은 폭설로 바뀐다. 남체 바자르에서 잔다면 몰라도 몬조 까지 간다면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 길은 샹보체(Shangboche-3,720m-비행장이 있는데,현재는 사용안함) 를 거쳐 남체까지 급경사에 길이 여러 갈래여서 좀 위험하다.그냥 남체로 빠질걸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포터들은 이미 남체를 지났을텐데....정신없이 하산하여 남체에 도착하니 눈은 머리와 어깨에 수북하고,우리는 선술집 처마밑에 앉아 논의했다.결국 강행으로 결정했다.이틀 후 루클라에서 비행기가 제대로 뜬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서둘러 내려 가는 길,올라 올 때 그 남체 고개를 내려가 보니 가도가도 끝이 없다.두 번째 미끄러워진 다리를 건너는데 놀랍게도 포터가 그 눈속을 뚫고 마중을 나왔다.우리는 포터를 안심시키고 먼저 가서 난로부터 피워 놓으라고 시키고는 죽기 살기로 달렸다.도착직전 체크포인트에서 여권과 영수증을 제출하니 관리자는 놀랐다.그 일정으로 완주한 우리를 축하했다.몬조에 도착,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스무번째,루클라 공항의 예띠(Yeti)롯지

자고 일어나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였다.전 날 강행한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국내에서의 산행에서도 그런 눈은 맞아 본 적이 없고 더구나 히말라야에서의 산행에는 올라갈때 였으면 그냥 하산해야할 경우도 있었을텐데... 몬조와 루클라는 해발표교가 거의 같아서 이 10km여의 긴 고갯길은 지리하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여 루클라에 도착하여 예띠롯지에 짐을 풀었다. 우선 포터들의 임금을 계산해 주고(약간의 팁을 보탬)양말,옷가지,라면등속의 선물을 주고 보냈다.육류라고는 한 번도 못먹은 산행이라 닭을 두마리 잡아 삶고 모자란 소주를 대신해서 네팔제 위스키인 히말라얀을 마셨다.주인은 승려로 친절했고,부인은 정이 많아 우리를 감동시켰다.아마도 내가 네팔을 다시 찾고 다시 에베레스트 코스를 등반하면 그 몇의 이유중 예띠롯지의 정 때문일 수도 있다.이제 공식적인 등하산은 모두 끝났다.공항을 바라보며 싱숭생숭했다.

예띠롯지에서 전통복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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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한번째,굿바이 히틀러들 !

이튿날 아침,루클라 공항은 북적였다.아침 8시부터 짐을 부치고 대기 하였으나 비행기는 좀체로 오지 않는다.특히 우리가 예약한 예띠 에어라인은 감감무소식. 결국 점심때가 되자,항공사에서 커피를 한 잔씩 돌린다.얻어 먹고도 약 한 시간을 기다린 후 비행기가 한 대 왔는데,우리는 다음 비행기란다.이유를 알아 보니 독일의 단체관광객 12명이 힘을 과시한 모양이다.남은 우리와 영국,스웨덴등의 트래커들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즐겁게 탑승하러 가는 독일인들의 뒷꼭지에 대고 외쳤다.Good bye,Hitlers ! 모두 웃었다.다행히 몇 분 후 비행기는 왔고 우리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그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비원의 형수님은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를 보고는 삼겹살을 굽고 김치찌게를 끓이고 소주를 냈다.고소가 심했거나 덜했거나 우리는 모두 이겨냈고,조금의 낙오도 없었으며,팀은 완벽했다.제각기 다른 방향으로지만 모두의 느낌은 같았으며,그 밤 우리는 취해서 기타를 치며 그리운 노래들을 불렀다.상큼한 카트만두의 밤공기가 시원했다. 이걸로 트래킹 기행문을 마칩니다.그동안 모두 고맙습니다. 히말라얀이 되고 싶은 분은 연락주시면 최상의 여행이 되도록 도와 드립니다. 여행사는 통하지 않으며,또한 9월에 계획이 있으니 동반 트래킹도 가능합니다. 또한 그 안에 여행을 원하시면 꼭 제가 아니더라도 아래의 멜에 문의하시면 도와 드립니다.상업적인 여행은 반대합니다.

딩보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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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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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 파타르(5,5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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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동아일보 \"食客\"의 허영만님,박영석과 함께 K2갔을때 베이스에서 고소먹은 님을 도와준 마익수가 술 사달랍니다.만화책 몇 권으로 때웠다고...

정운하 xfin2@naver.com

댓글목록

뉴다풀님의 댓글

뉴다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멋진 모습 잘 보고 느꼈습니다.

인간 승리의 모습이 엿 보입니다.  ^^

덕분에 사진으로나마 히말라야 잘 다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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